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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문장

#문장53. 김혼비-다정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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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50. 그렇다. 여성들도 소리 지르고 때리고 맞는 훈련을 해야 한다. 미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원초적 싸움의 세계’를 경험을 통해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Page61. '쿨하다‘가 한 시대의 정신으로 각광받으면서 윤리적 노팬티 상태가 패션인 양 포장되며 쏟아지는 무례한 독설들. 그런 말들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라는 비난과 조롱들.

Page97. 얼마 전 친구에게 부칠 책들이 있어 우체국에 들렀다가, 진지하게 ‘정필모’라는 이름을, 친구가 산 파쇄기에 갈기갈기 찢길 운명인 송장에 적고 있으려니 문득 마음이 먹먹해졌다. 집에서조차 안전할 수 없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흔적은 기를 쓰고 없애야 하는 현실이. 안간힘들이.

Page135. 그런 내 성향과 행동 패턴을 고려했을 때 내가 M에게 자주 가야겠다고 먼저 알아서 생각했을 확률은 전혀 없었고, 생각했다고 한들 어차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가지 말았어야 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실 나는 그게 ‘시작’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백지에 별생각 없이 점 하나를 찍고 말 때, 누군가는 그 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긴 선을 그리려 한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알았어야 했다.

Page151. 완벽했다. 매무새도, 시간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도. 오늘 설령 박살이 날지라도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최고의 날이었다. 어젯밤 챙겨둔 가방을 들고 캐리어를 끌며 밖으로 나와 친구들의 격려 섞인 배웅을 받으며 버스를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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