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질의 사랑]
네가 자꾸 눈길을 끌었다는 거, 네가 특별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 아니야. 창피해서 돌려 말했는데 그냥 첫눈에 반한 거였어. 혹시나 오해할까 봐.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사실 그렇게 슬프지도 않아."
엄마가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결국,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걸 잊으면 슬퍼지는 거야."
"......"
"아마 그 작가는 다시는 쿠바로 돌아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겠지. 언제든 다시 쿠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면 그렇게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은 문장은 쓰지 않았을 거야."
"작가가 조금 비겁한 것 같아요. 이건 그냥 사랑인 척 썼을 뿐이에요."
라오였다.
"어떤 사랑은 우주를 가로지르기도 하는 걸요."
[마지막 드라이브]
자동주행이 가능했던 자동차였으므로 자동차는 추돌 가능성을 감지하자마자 에어백을 터뜨렸다. 하지만 운전자는 사망했다. 구겨진 차체의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조수석으로 몸을 아예 틀어, 상대방을 감싸 안은 운전자가 있었다.
"좀 더 행복할 것 같나요?"
"잘하면?"
"행복하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요?"
한나는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래."
더미가 반짝이는 창밖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더미가 노래를 불렀다. 쳇 베이커의 '블루룸'이었다.
길 양옆으로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철창처럼 버티고 있다. 도망갈 길이 없다. 비명을 질러야 하는 델리가 오늘은 더미를 보며 웃는다.
델리가 더미의 손을 잡는다.
더미가 그런 델리의 어깨를 감싸 안고 얼굴을 자신의 품 안에 넣는다. 충돌을 감지한 센서가 사방에서 에어백을 터뜨리고, 그 순간 시속 84킬로미터로 달려오던 대형 트럭이 코앞까지 다가온다. 더미가 눈을 감고 델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사랑하는 델리, 나와 드라이브를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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