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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23. 김신회-아무튼, 여름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문장22. 장류진-일의 기쁨과 슬픔 인생에서 가장 후회했던 경험과 그 이유를 기술하시오. 나는 하얀 바탕에 깜빡이는 커서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나는 봉투를 좀더 가까이 가져와 대각선으로 쓰인 글자를 읽어나갔다. Do not bend(Photo inside) 말 그대로 노파심이라는 게 이런 걸까. 사진이 지구 반대편 먼 길을 거쳐가는 동안 행여나 구겨질까, 노인은 많이 걱정했던 것 같다. 나는 시리얼 상자를 가위로 자르고, 그것을 풀로 사진의 뒷면에 단단히 붙이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얀 밤, 태양이 뭉근한 빛을 내는 창가에 앉아 가위와 풀과 사진 그리고 편지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더듬거리는 노인의 쭈글쭈글한 손을. "글씨를 힘차게 쓰던 용감한 한국의 숙녀분께"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구나. 나는 마치 그 편지를 처음 보는 ..
#문장21. 박서련- 더 셜리 클럽 표정의 책임은 절반 정도 그 표정을 짓는 사람에게 있고, 나머지 절반은 표정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을 해요. 나는 민폐라는 말의 뜻을 옮기기를 포기하고 '투 머치'를 강조해서 말했다. 해먼드 할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클럽의 모토가 뭐였지요?" "재미, 먹거리, 친구!"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Fun, Food, Friend라고 외쳤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건?" "친구!" 셜리 해먼드, (이 편지를 다른 셜리들에게도 읽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 공항에 있어요. 멜버른을 떠나 울루루로 갈 생각이에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찾는 사람이 거기에 간 것 같아요. 셜리들 덕분에 용기낼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얼마나 고마운지 이 짧은 편지엔 다 담을 수도 없어요. 언젠가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