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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17. 김금희-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환자가 집안에 있는 건 슬픈 일이고 자기 자신의 삶에 근저당이 잡히는 셈이었다. 죽음이라는 채무자가 언제 들이닥쳐 일상을 뒤흔들지 몰랐다. 그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의식이 꺼졌을 때 자연스레 종료되지만, 타인이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채무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사람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닳는 것 같아요. 그렇게 믿고 따르던 형인데 지금은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인터넷 짤로만 남아서 정치 게시판을 떠도는데 그렇게 형이 닳는 거예요. 이제 그런 형만 남는 거예요. -페퍼로니가 뭐였는데요? 함께 출연한 게스트가 묻자 그는 글쎄요, 하더니 잠시 말을 끌었다. 그러고는 결국 아무데서도 오자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문장16. 윤이형-작은마음동호회 민에게. 나중이 이 책을 다시 읽고 다른 것을 느끼게 되더라도, 약속해, 어떤 가정법도 사용하지 않기로. 그때 무언가를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말들로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해. 가정법은 감옥이야. 그걸로는 어디에도 닿을 수가 없어. 나는 현재를 살 거야. 과거의 형벌을, 잘못내린 선택의 총합을 살지 않을 거야. 기억이라는 보석 속에 갇혀서 빛나는 과거의 잔여물을 되새김질만 하지도 않을 거야. 오직 한 번뿐인 현재를 살거야. 지금을. 민,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문장15. 한병철-피로사회 - 자기 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그러한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 면역 방어의 대상은 타자성 자체이다. 아무런 적대적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은 타자도,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타자도 이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