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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14. 최은영-내게 무해한 사람 [그 여름] -이경씨는 나를 봤어요. 난 이경씨가 인사도 하기 싫을 정도의 사람이 된 거죠. [모래로 지은 집]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진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문장13. 천선란-천 개의 파랑 고통은 인간을 살게 했고, 고통이 인간을 성장시켰다. 고통은 생명체만이 지닌 최고의 방어 프로그램이다. 나의 구원자이자 나를 선택한 세계. 내가 이렇게 자신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면 연재는 분명 미간과 콧등에 주름을 잔뜩 만들고 나를 쳐다봤을 것이다. 괴팍하지만 미움이 없는 신비로운 표정으로. "달릴 수 있을 거야." 부질없는 위로였다. 밧줄이 필요한 사람에게 휴지를 뽑아 내민 기분이었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보경의 눈동자가 노을빛처럼 반짝거렸다..
#문장12. 은희경-새의 선물 -완전히 헤어진다는 것은 함께했던 지난 시간을 정지시킨다. 추억을 그 상태로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다. 이후로는 다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간에 의해 지나간 시간의 기억이 변형될 염려도 없다. 그러므로 완전한 헤어짐이야말로 추억을 완성시켜준다. 현석오빠와 완전히 헤어짐으로써 내 첫 키스라는 추억의 박제는 완성되었다. -나는 그 신문의 칼럼을 오릴까 했으나 그냥 접어서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그의 얼굴을 오려서 소중히 간직해두었다가 사랑이 지나가버린 그 어느 날인가 문득 낡은 신문 조각 이상의 의미가 없는 그 종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구겨버리게 될 때, 그런 때 찾아드는 아무 쓸모 없는 회한 따위가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