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80)
#문장20. 최은영-밝은 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 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 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드러내? 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문장19. 정세랑-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나는 나의 최대 가능성을 원해. 세계화란 친구를 지구 저편에 데려가버리는 현상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L이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을 '친구네'라고 여기는 것이 싫지 않았다.
#문장 18. 양귀자-희망 '나성여관'에 살았던 그들의 근황이 궁금하다. 특히 우연이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가끔 생각난다. 그저 건재하기만을 바란다.
#문장17. 김금희-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환자가 집안에 있는 건 슬픈 일이고 자기 자신의 삶에 근저당이 잡히는 셈이었다. 죽음이라는 채무자가 언제 들이닥쳐 일상을 뒤흔들지 몰랐다. 그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의식이 꺼졌을 때 자연스레 종료되지만, 타인이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채무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사람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닳는 것 같아요. 그렇게 믿고 따르던 형인데 지금은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인터넷 짤로만 남아서 정치 게시판을 떠도는데 그렇게 형이 닳는 거예요. 이제 그런 형만 남는 거예요. -페퍼로니가 뭐였는데요? 함께 출연한 게스트가 묻자 그는 글쎄요, 하더니 잠시 말을 끌었다. 그러고는 결국 아무데서도 오자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문장16. 윤이형-작은마음동호회 민에게. 나중이 이 책을 다시 읽고 다른 것을 느끼게 되더라도, 약속해, 어떤 가정법도 사용하지 않기로. 그때 무언가를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말들로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해. 가정법은 감옥이야. 그걸로는 어디에도 닿을 수가 없어. 나는 현재를 살 거야. 과거의 형벌을, 잘못내린 선택의 총합을 살지 않을 거야. 기억이라는 보석 속에 갇혀서 빛나는 과거의 잔여물을 되새김질만 하지도 않을 거야. 오직 한 번뿐인 현재를 살거야. 지금을. 민,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문장15. 한병철-피로사회 - 자기 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그러한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 면역 방어의 대상은 타자성 자체이다. 아무런 적대적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은 타자도,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타자도 이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
#문장14. 최은영-내게 무해한 사람 [그 여름] -이경씨는 나를 봤어요. 난 이경씨가 인사도 하기 싫을 정도의 사람이 된 거죠. [모래로 지은 집]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진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문장13. 천선란-천 개의 파랑 고통은 인간을 살게 했고, 고통이 인간을 성장시켰다. 고통은 생명체만이 지닌 최고의 방어 프로그램이다. 나의 구원자이자 나를 선택한 세계. 내가 이렇게 자신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면 연재는 분명 미간과 콧등에 주름을 잔뜩 만들고 나를 쳐다봤을 것이다. 괴팍하지만 미움이 없는 신비로운 표정으로. "달릴 수 있을 거야." 부질없는 위로였다. 밧줄이 필요한 사람에게 휴지를 뽑아 내민 기분이었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보경의 눈동자가 노을빛처럼 반짝거렸다..
#문장12. 은희경-새의 선물 -완전히 헤어진다는 것은 함께했던 지난 시간을 정지시킨다. 추억을 그 상태로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다. 이후로는 다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간에 의해 지나간 시간의 기억이 변형될 염려도 없다. 그러므로 완전한 헤어짐이야말로 추억을 완성시켜준다. 현석오빠와 완전히 헤어짐으로써 내 첫 키스라는 추억의 박제는 완성되었다. -나는 그 신문의 칼럼을 오릴까 했으나 그냥 접어서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그의 얼굴을 오려서 소중히 간직해두었다가 사랑이 지나가버린 그 어느 날인가 문득 낡은 신문 조각 이상의 의미가 없는 그 종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구겨버리게 될 때, 그런 때 찾아드는 아무 쓸모 없는 회한 따위가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문장11. 홈플러스-순응이 곧 끝납니다 우린 당신이 제대로 찍길 바랍니다. 정답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 시스템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출발을 하길 바랍니다. 우린 당신이 제대로 붙길 바랍니다. 대학에 붙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기조대로 세상과 제대로 한 판 붙길 바랍니다. 순응이 곧 끝납니다. 이제 세상에 불응할 수 있는 성인이 된 수험생 여러분을 응원합니다.